2009년 02월 26일
역대 대통령 리더십
2009년 02월 26일
역대 대통령 리더십
국민 心琴 울리는 발언 극히 드물어” 말로 본 역대 대통령 리더십
감동의 연설로 화제를 모은 버락 오바마 새 미국 대통령. 국가 최고지도자인 대통령의 말은 매우 큰 영향력을 가진다. 우리 대통령들은 어떤 ‘말의 리더십’을 보였을까? 대통령리더십 전문가 최진 소장이 이를 분석했다.
로마 시민들은 영웅 카이사르(Caesar)의 말에 열광했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힘차고 압축적인 카이사르의 화법은 강력하고 진취적인 진두지휘형 리더십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로부터 2,000년이 훨씬 지난 2009년 2월 현재 이탈리아 로마 시민들은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막말에 넌더리를 치고 있다.
“어려운 경제상황을 벗어나려면 백만장자와 결혼하라!”
“오바마는 젊고 잘생겼으며 선탠까지 했다!”
경솔한 베를루스코니의 화법은 가볍고 튀는 선동가형 리더십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백만장자 출신인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톡톡 튀는 화법만큼이나 독특한 언행으로 자주 구설수에 오르내린다. 우리는 어떤가? “내 통장에는 29만 원밖에 없다!”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배 째라식 발언’은 두둑한 배짱과 무조건적 리더십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국가지도자의 말은 곧 리더십 자체다. 말투를 보면 사람 됨됨이를 알 수 있듯, 국가지도자의 말투를 보면 자질과 리더십을 알 수 있다. 최근 국가지도자의 말이 어느 때보다 관심을 끄는 이유는, 가뜩이나 어려운 시기에 국가지도자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아쉽고 사회 전반에 막말이 횡행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환상적인 언어의 리더십을 유감없이 보여주면서 새삼 우리 대통령의 ‘입’에 관심이 모였다. 우리나라 대통령들의 말을 유심히 들어보면 당시의 시대상황은 물론 성장 과정과 성격, 스타일과 리더십의 특징까지 파악할 수 있다. 언어철학자 자크 라캉은 프로이트적 기법을 적용한 언어학을 통해 인간의 말을 분석하면 그의 정신세계까지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언어와 의식구조는 밀접하게 관련돼 있기 때문에 정치지도자의 발언만으로도 그의 리더십을 익히 파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제 집권 2년째 접어든 이명박 대통령에게 가장 필요한 리더십은 무엇일까? 어차피 경제상황이 단기간에 호전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딱딱한 CEO형 리더십 못지않게 부드러운 감화적 리더십이 절실하고, 그 감화적 리더십의 핵심은 바로 ‘말[言]’에서 비롯된다.
대국민 메시지 & 국정 리더십 결과물
이 대통령은 한반도대운하, 남북관계, 대야관계에서 말로 신뢰와 지지를 얻어야 한다. 이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가 마치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처럼 회동만 하면 잡음이 생기는 이유에는 화법의 차이도 있다. 이 대통령의 공세적이고 포괄적 화법과, 박 전 대표의 방어적이고 간결한 화법 사이에 편차가 크기 때문이다.
사실 이 대통령은 집권 1년이 지나도록 국민에게 감동을 준 적이 드물고, 경인운하 논란 과정에서 앞뒤가 다르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 때문에 화법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이 대통령의 리더십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발언을 하나만 꼽는다면, 아마도 “나는 대한민국주식회사의 CEO다”일 것이다.
국가를 기업과 동일시하면서 기업경영에서 성공했듯 국가경영에서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보인다. 더구나 “바람 잘 날 없는 조직이 성공한다”거나 “강한 자는 우회하지 않는다”는 CEO 시절의 발언은 마치 ‘국정이 아무리 요란해도 끝까지 밀어붙여 관철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그러나 불도저식 정면돌파 방식은 CEO 시절에는 통했을지 모르지만 국가경영에서는 엄청난 부작용과 저항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2008년 쇠고기파동과 촛불시위를 통해 체험했을 것이다. 이 대통령의 인간중심적 리더십과 그에 따른 조직관리 방식은 “사업의 성패는 제도나 시스템보다 궁극적으로 사람을 통해 이루어진다.
사람에 주목하지 않고는 시스템이나 문화도 있을 수 없다”는 말에서 잘 나타난다. 다만 이러한 인간중심적 리더십은 집권 2년째 친정체제 강화에 대한 강박감에 휩싸여 코드인사로 변질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하고, 반대로 박근혜 전 대표 진영이나 야당을 상대할 때는 포용력으로 발휘되도록 애써야 한다.
대통령의 말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의사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중요한 정책인 동시에 대국민 메시지이며 국정 리더십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나 융에 따르면, 사람의 습관이 성장기에 형성되듯 언어습관도 어릴 때부터 형성돼 성인이 된 뒤 부지불식간에 외부로 표출된다.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고 험난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훗날 거칠고 투박한 언어를 곧잘 사용하고, 반대로 원만한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은 부드럽고 감동적 언어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은 대부분 험난한 삶을 살아왔기에 말투가 강한 편이다. 그 가운데 대표적 인물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이 5년 재임기간 말로써 얼마나 많은 말을 만들어냈는지에 대해서는 두말할 여지가 없다.
그는 열정적 선동가형 리더십의 소유자답게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드는 직선적이고 감성적 화법을 구사했는데, 이런 감성화법은 기존의 권위주의적 화법에 식상한 국민에게 통쾌함을 줬지만, 너무 투박하고 빈번하게 이뤄지면서 점차 짜증을 불러왔다.
말의 권위·위엄 지나쳐도 곤란
노 전 대통령은 2006년 12월21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 간단한 메모지만 준비한 채 단상에 올라 발언 예정 시간보다 무려 1시간 정도를 초과해 높은 언성과 성난 표정, 주머니에 양손을 집어넣은 자세로 ‘난데없이 굴러온 놈’ ‘미국 엉덩이’와 같은 공격적 언행으로 격한 감정을 쏟아내 파문을 일으켰다.
대통령의 부적절한 언행은 옳고 그름의 평가 여부와 상관없이 리더십의 부재와 국정운영의 미숙함으로 치부되면서 정부 전체를 공격하는 빌미를 제공한다. 대통령이 잦은 말실수로 인해 국민에게 ‘미운털’이 박히면 아무리 긍정적 정책을 내놓아도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이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화법에서 배울 만한 점은 철저한 사전 준비다.
김 전 대통령은 세계적 명연설가로 통하는 영국의 처칠 총리가 즉흥연설을 사전에 준비하듯 즉흥적 유머까지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했다. 덕분에 말실수를 하거나 빈말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다만 때때로 지나치게 논리적이고 이성적이어서 듣는 사람이 재미 없고 딱딱하게 느낄 때도 있다.
여기에 비하면 김영삼 전 대통령의 화법은 정반대로 비논리적이고 감성적이어서 듣는 사람이 재미 있고 인간미를 느끼기도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제외하면 김영삼 전 대통령만큼 말실수로 숱한 화제를 낳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경우 의도적인 막말이 많았다면, 김 전 대통령은 무의식적인 실언이 많았다.
예컨대 초등학교를 방문했을 때 ‘결식아동’을 ‘걸식아동’으로, 제주도를 방문해서는 자꾸 거제도라고 말하고, 대만의 리덩후이(李登輝) 총통을 ‘이등 총통’이라고 잘못 말했다. 이 외에도 “세종대왕은 우리나라의 가장 위대한 대통령(왕)” “정몽준(전봉준) 장군의 고택” “박정희 대통령의 상가(생가)” “역사의 아이노리(아이러니)” 등 김 전 대통령의 실언 행진은 끝이 없다.
이런 실언은 야당 시절에는 인간미로 느껴지지만 국가 최고지도자가 된 뒤에는 신뢰성 부족을 가져온다. 김 전 대통령의 말실수는 미국의 부시 전 대통령처럼 히스테리적 성격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시어도어 밀런의 히스테리 이론에 따르면 말실수는 논리와 체계적 인지능력에 중대한 결함이 있음을 의미한다.
즉, 분석력과 논리력이 떨어지고 산만하고 피상적이다. 이 대통령이 전두환식 화법을 통해 생각해볼 만한 대목은 말의 권위 또는 위엄이다. 전 전 대통령은 보스형 리더답게 발언 때마다 굵직한 저음으로 “본인은…”이라고 시작해 권위주의적 느낌을 강하게 풍겼는데, 과거 군주시대에 “짐은…” “과인은…”이라고 말하던 왕이나 독재자의 화법을 연상시킨다.
전 전 대통령은 군대시절부터 동료와 부하들을 모아놓고 큰소리로 무용담을 털어놓고 좌중을 휘어잡는 자리를 즐겼다. 불 같은 성격만큼 말투도 화끈하고 직선적이다.
호화 골프나 호화 외유로 비판받는 와중에 법원으로부터 추징금을 재촉받자 “내 재산은 예금과 채권 등 29만 원뿐”이라고 항변할 정도였다. 세상 사람들은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워낙 단호한 어조로 잘라 말한 배 째라식 답변에 혀를 내둘렀다.
가장 아쉬운 것은 ‘감동 부재’
노태우 전 대통령 하면 떠오르는 말은 “저 노태우입니다. 믿어주세요!”일 것이다. 이 말 속에는 ‘제가 노태우라는 사람인데, 저를 믿기 어렵겠지만 제발 좀 믿어달라’는 간절한 하소연이 담겨있는 듯하다.
이처럼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은 항상 큰 흐름에 뒤따라가는 대세편승형(eventful) 지도자답게 발언도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려는 듯 부드럽고 조심스럽다. 이처럼 국가지도자가 가끔 간절한 어법으로 국민에게 호소할 필요도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군인정신에 투철한 무인형 지도자답게 발언에 절도가 있고 힘이 있었다. 불필요한 말이나 우스갯소리를 남발한 적이 드물다. 기자회견이나 대중연설을 할 때도 미사여구나 제스처, 즉흥발언을 한 적이 거의 없이 차분한 어조로 원고를 그대로 낭독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다소 따분하게 들리지만 신뢰성이 있고 실수하는 법이 없다.
박 전 대통령은 경제개발을 일관성 있게 추진한 과업지향적 리더십의 소유자로서 말보다 행동을 중시했다. 박정희 정권의 최장수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 씨는 “박 대통령은 말을 내세우지 않았다.
대신 실무자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심사숙고해 정책을 결정하되, 일단 정책이 결정된 후에는 강력하게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의 과묵함과 전문가 중용, 신중한 결정, 강력한 추진력은 해럴드 라스웰의 ‘행정가형 지도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 운영과 측근 참모, 국내외 정책 등 국정운영 과정에서 치밀하고 체계적이며 지속적인 행정가형 스타일(agitator style)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1968년 12월1일(월요일) 일기장에 만년필로 꾹꾹 눌러쓴 시(詩) <건설하는 아침>을 보면 행정가형으로서의 면모가 잘 나타난다.
“일요일 이른 아침인데도 햄머소리 요란하게 창가에 들리고, 길가는 사람마다 발걸음이 빠르기만 하다 / 이 강산 도처에서 건설과 생산과, 또 생각하고 궁리하고 창조하는 인간의 이룩함이 물결치고 있다. / 붉은 침략자들 무찌르기 위한 젊은이들의 눈동자가 휴전선 150마일에서 태백산 봉우리에서 샛별처럼 반짝이고 날카롭게 응시한다….”
이 시에는 근대화 물결과 경제분야에 대한 관심, 새마을운동과 같은 국민적 캠페인, 분단 상황과 반공주의가 고루 배어있다. 박 전 대통령다운 치밀함이 가득하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이승만 전 대통령도 자타가 공인하는 웅변가였다. 오랜 해외 망명생활로 우리말보다 영어가 더 익숙했지만 경무대 회의 때마다 일장연설을 즐겼고, 장관들 중에서 자기보다 더 말을 잘하는 사람은 쥐도 새도 모르게 경질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그의 말은 간결하면서도 호소력을 지닌 이승만식 화법으로 오늘날에도 곧잘 인용되는 명언이다.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을 가리킬 때 종종 ‘과인(寡人)’이라고 표현해 조선시대 가부장적 권위주의를 드러내기도 했다. 집권 2년째를 맞은 이 대통령을 비롯해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의 화법 가운데 가장 아쉬운 대목은 바로 감동 부재다. 국민의 심금을 울리는 발언, 역사에 남을 만한 명연설이 미국과 같은 선진국 지도자들에 비해 현저하게 부족하다.
특히 감화(感化)가 부족하다. 감화는 상대방에게 좋은 반응을 주는 감동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자신과 상대방 사이에 좋은 감정이 동시에 일어나게 만드는 소통의 리더십이다. 위기일수록 지도자와 국민 사이에 감화를 통한 소통의 리더십이 극대화돼야 한다. 처칠·링컨·케네디·루스벨트 등 성공한 지도자의 공통점은 국민에게 감화를 일으키는 명연설가였다는 점이다.
# by | 2009/02/26 22:13 | 김남수 [뜸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